오리진 세상 모든 것의 기원
화폐
물물교환 경제에서 화폐가 탄생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인간과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적 약속, 돈 (화폐)
연봉, 수당, 상여금... 오늘날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값이 매겨지는 삶을 살고 있다. 돈은 누리를 웃기고, 울리고, 움직이게 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간관계를 연결하기도 한다. 시간과 노력, 아름다움 등 우리 삶을 지태하는 가치들은 돈으로 대변된다. 우리는 이런 돈을 끝없이 욕망하며, 모으고, 굴리고, 아끼고, 때때로 더 많은 돈을 위해 탕진하기도 한다. 돈은 이제 세상을 지배하는 '모든 가치의 가치'처럼 보인다. 이렇게 힘센 돈은 도대체 어떻게 등장했을까? 어떻게 발달했고 어디까지 확장될까? 무엇까지 값을 매길 수 있을까?
"눈을 상하게 했을 경우 양1마리, 팔을 못 쓰게 만들었을 경우 말 1마리?!"
경제학자 홍기빈은 화폐학자 필립 그리어슨의 논의를 인용하여, 공동체에서 발새한 인명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일정한 재물을 규정한 목록, 즉 '인명금'에 돈의 시작과 관련된 비밀이 숨어있다고 설명한다. 즉, 세상의 모든 일을 '숫자'라는 보편적이고 효울적인 체계로 바꾸려는 사고방식과 공동체의 약속에서 돈의 기원을 찾는다.
값, 대가, 비용에 대해 언제나 생각한다. 무턱대고 실망하기 싫어서, 한없이 좌절하기 싫어서, 괜히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치러야 할 것을 지불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현대판 인명금이다. 나약한 내면이 쓰러지지 않기 위해 값을 냈다고, 날 선 세상의 눈에 단단해지기 위해 대가를 치렀다고, 아픈 통과의례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비용을 지불했다고 생각한다. --- p. 5
돈은 수수께끼이다. (…) 이 수수께끼는 돈의 강력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 힘의 ‘본질’에 관해 의문을 품지 않는 데에서 비롯한다. 돈의 기원과 본질을 ‘물물교환에서 선택된 사물’이라고 보는 주류 경제학의 설명에는 의문이 허락되지 않는다. 모두들 교과서에서 물물교환 과정에서 돈이 나온 사연을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에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동전이나 지폐라는 ‘사물’ 이상의 의미가 있다. --- p. 6
그날 번 돈 그날 쓰고 내일도 없이 살다 보면 내일도 없는 사람이 되더라고. 돈도 눈이 있는지 하찮게 벌면 하찮게 써지더라고. --- p.37
회사라는 게 없었으면 너랑 나랑 만날 일이 있었겠냐? 우린 어떤 면에선 돈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친구 이전에 우린 그런 관계야. 그게 깔끔하게 정리된 다음에야 우리는 친구가 되는 거지. --- p.57
밥값을 해야지, 몸값을 해야지, 쉽게 말은 하지만, 그게 얼마여야 하는지 아무도 몰라. 하지만 누구나 자기의 몫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 앞으로 부여될 몫을 위해 준비하기도 하고 아직 혼란스러워 하며 제 몫을 찾아 나서기도 해. 그런데… 너는 어떤 몫을 하고 있니?
--- p. 63~64
아빠. 나는 돈 안 들어? 난 돈 많이 안 들어서 키우는 거야? 나 키우다 돈 많이 들면… 버려? --- p. 83
감정을 계량할 수 있다면,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싫어하는지 다 알 수 있겠네? 그곳에선. (…) 그런데… 내가 좀 더 사랑한다고 느끼는, 아니, 알게 되는 순간, 너는 왜 나만큼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을까? 아니면 속앓이만 하고 있을까.
--- p. 143~144
누가 백 억하고 20대로 돌아가는 거하고 선택하라면, 나는 두말 않고 20대로 가는 거야. 그건 감히 값을 못 정해. 당연히 20대로 가는 거지. -151~152쪽 (1부 오리진 만화 --- p. 7
그리어슨은 이 체계에서 세상만사를 일관된 수량 체계로 표현하려는 인류의 사고가 최초로 드러난다고 말하며, 이를 돈의 기원으로 지목한다. 돈을 교환과정에서 선택된 ‘사물’이 아니라, 하나의 ‘사고방식’이나 ‘약속’으로 본 점에 주목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체계는 어디까지나 여러 비율을 보여줄 뿐, 당시에 보편적인 가치척도가 발생한 건 아니었다. --- p. 187
오늘날에는 돈이 동전과 지폐에서 신용카드, 가상화폐 등의 보이지 않는 형태로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숫자로 세상 만물을 표현하는 하나의 ‘사고방식’이며, 공동체가 합의한 ‘약속’이고, 하나의 ‘사회적 기술’로서 기능한다는 돈의 근본은 최초의 기원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돈은 기원에서부터 사물 이상의 의미를 지녔으며, 새로운 형태의 등장보다는 그 기원이 더 강력해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물물교환 경제에서 화폐가 탄생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태초에 돈이 있고, 그다음 시장이 생기다
서울시립과학관장 이정모, 인류학자 김현경, 천문학박사 이명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화계의 거장 윤태호의 협업으로 기획된 교양만화 [오리진] 시리즈는 3권에서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과 함께 ‘화폐’를 주제로 내세운다.『거대한 전환』, 『돈의 본성』 등의 책을 국내에 소개하며 자본주의와 우리의 삶에 굵직한 화두를 던져온 경제학자 홍기빈은 이번 책에서 화폐의 기원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물교환(시장)에서 선택된 사물’이 아니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홍기빈은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주류경제학의 이 같은 화폐론은 고고학적 증거도 없을 뿐더러, 이론적으로도 성립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화폐의 진정한 기원은 무엇일까? 홍기빈은 화폐학자 필립 그리어슨의 논의를 인용하며,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신체적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인명금’(人名金, Blood Money)에서 그 시작을 찾는다.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탈리오 법칙(lex talionis,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한다는 보복의 법칙)이 인류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일관된 보상체계로 표현하고자 하는 화폐적 ‘사고’가 나타난 최초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숫자로 세상의 만사만물을 표현하는 가치척도의 기능(화폐의 제1속성)은 공동체의 약속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회적 기술’로서, 인류 문명이 더 큰 공동체와 조직으로 확장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다시, 비트코인으로 돌아와 보자. 블록체인 기술 등의 첨단 IT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화폐는 이 같은 화폐의 근본 속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가장 진화한 형태의 화폐일까? 아니다. 홍기빈은 화폐적 ‘사고’의 발생인 ‘인명금’과 함께 국가의 ‘세금’을 화폐 기원의 또다른 짝으로 제시한다. 인명금에서 그 사고의 씨앗이 발생하였다면, 국가의 조세와 이에 대한 증서가 실질적인 화폐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서야 동일한 가치척도를 통해 ‘시장’에서의 교환도 가능하게 되었다.
오늘도 밥값, 몸값 하셨습니까?
얼굴도 모르는 우리가 관계 맺어지는 이유
인생에서 치러야 하는 비용, 값, 대가에 대해 늘 고민했다는 윤태호 작가는 만화에서 모든 관계의 중심이 되는 돈 -금전에 의한 결합 Cash Nexus- 과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한데 엮어낸다. 아르바이트, 자영업, 직장생활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햇살타운의 사람들, 월세와 관리비, 빌린 돈, 보상금 따위의 돈 문제로 얽히고설킨 관계, 날린 투자금 5천만 원 대신 들어온 정체불명의 로봇 등. 전작 [미생]에서 ‘독자 개개인이 스스로를 목격하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고 했던 그는 이번에도 특유의 서늘하고 날선 통찰로 작품 안의 우리를 목격하게 한다.
돈을 넘어, '좋은 삶'을 향해
모든 것을 하나의 숫자로 바꾸는 돈이라는 사회적 기술에는 대단한 장점과 위력이 있다. 20세기 초중반에는 돈의 단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모든 사회의 목표가 의식주의 풍요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돈으로만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가치가 있다. 오늘날 인류가 꿈꾸는 '좋은 삶'은 좀 더 다양해졌다.
2천5백 년 전에 이미 돈이라는 사회적 기술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람이 있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래스는 살림살이, 즉 가족의 좋은 삶을 위해 집안을 관리하는 기술인 '오이코노미아'어 단어 '이코노미'와 더 많은 돈을 버는 기술인 '크레마티스티케'는 어디까지나 '오이코노미아'의 하부 기술로서만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본래 경제 문제란 '좋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그 방법의 하나로 재물을 얻는 기술이 있고, 그 재물의 한 형태로서 돈이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돈이 동전과 지폐에서 신용카드, 가상화폐 등의 보이지 않는 형태로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숫자로 세상 만물을 표현하는 하나의 '사고방식'이며, 공동체가 합의한 '약속'이고, 하나의 '사회적 기술'로서 기능한다는 돈의 근본은 최초의 기원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돈은 기원에서부터 사물 이상의 의미를 지녔으며, 새로운 형태의 등장보다는 그 기원이 더 강력해지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돈은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사회적 기술 가운데 보편성에서는 물론, 그 안에 담긴 상징체계와 이야기로 질서를 만드는 힘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궁극적인 사회적 기술이 되었다. 하지만 돈이란 좋은 삶을 위한 하나의 기술로서 시작됐음을 기억하고, 돈이 우리의 모든 삶을 장악하지 않도록 다른 종류의 사회적 기술을 모색해야 한다.
참고문헌
1.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길, 2009
2. 경제인류학 특강, 크리스 한키스 하트 지음. 홍기빈 옮김, 삼천리, 2016
3. 국부론, 에덤 스미스 지음,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03
4. 균현재정론은 틀렸다. 랜덜 레이 지음, 홍기빈 옮김, 책담, 2017
5. 금과 화폐의 역사, 피에르 빌라르 지음, 김현일 옮김, 까치, 2000
6. 돈의 본성, 제프리 잉햄 지음, 홍기빈 옮김, 삼천리, 2001
7. 만화로 읽는 부자들의 사회학, 미셸 팽송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015
8.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까치. 1986
9. 부채: 그 첫 5,000년,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1
10. 사람의 살림살이, 칼 폴라니, 박현수 옮김, 풀빛, 1998
11.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홍기빈 지음, 책세상, 2001
12. 역사, 헤로도토즈 지음, 천병희 옮김, 숲, 2009
13. 위대하고 찌질한 경제학의 슈펴 스타들, 브누아 시마 지음, 권지현 옮김, 휴머니스트, 2016
14.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2009
15. 중세의 화폐, 자크 르 고프 지음, 안수연 옮김, 에코 리브르, 2011
16. 고대법의 기원 함무라비 법전, 윤일구 지음, 한국학술정보, 2015
17. 화폐 경제, CCTV 다큐멘터리 <화폐> 제작침, 김락준 옮김, 가나출판사, 2014
18. Money 화폐의 역사, 캐서린 이글턴 조너선 윌리암스 외 지음, 양영철 김수진 옮김, 말글빛냄, 2008
'학습 > 학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지갑공부]오늘의 경제금융용어 : 가계수지 (0) | 2018.02.20 |
---|---|
(오늘의 시) 법정, 지금 이 순간 (0) | 2018.02.20 |
[내지갑정보]가계처분가능소득(가처분소득) (0) | 2018.02.13 |
[이정모 칼럼] 특수 상대성 이론이 더 어렵다고? (0) | 2018.02.06 |
[정태인의 경제시평]따뜻한 평화, 경향신문 (0) | 2018.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