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자취, 하숙 등 임대업자 극성 반대…환경, 교육 등 이유로 신축 막아
갈수록 커지는 대학생의 주거비 부담을 해결하고자 각 대학교와 정부가 대학 기숙사 신축에 나섰지만 지역 주민의 반대에 발목이 잡혔다. 대학생을 상대로 자취방, 하숙방 등 임대업을 하는 주민의 반대가 가장 심하다. 이들은 “기숙사가 새로 생기면 자취방과 하숙방을 찾는 학생 수가 줄어들어 생계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주민은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환경, 교육 등의 문제를 끌어들여 반대 여론을 만든다. 결국 공사는 점점 늦어지고 저렴한 기숙사를 고대하던 학생과 부모는 비싼 집세 탓에 허리가 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청년의 주거비 부담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22일 통계청 통계에 따르면 만 35세 미만 청년가구(2인 이상)의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RIR)은 2005년 13.3%에서 2015년 23.6%로 급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 중에서도 특히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은 학기 초가 되면 싼 방을 찾아 대학가를 헤맨다. 하지만 발품을 팔아봐도 서울지역 대학가 원룸 월세는 평균 50만 원 남짓. 보증금이 1000만 원에 육박하는 비싼 방만 남아 있는 경우도 많다.
서울 동작구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정모(22) 씨는 “전체적으로 자취방 월세와 보증금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지난해 초에도 방 대부분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45만 원이었다. 그런데 막상 방을 보면 남자 둘이 들어가기도 좁은 경우가 많았다. 더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었지만 예산이 모자라 어쩔 수 없이 그 방을 계약했고 아직까지 살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생은 대부분 자취방보다 대학 기숙사를 선호한다. 서울시내 대학 기숙사의 월 기숙사비는 20만~30만 원 선. 관리비나 보증금은 따로 없다. 외부에서 방을 빌리는 것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학교에서 고용한 관리인이 따로 있어 웬만한 원룸보다 쾌적하다. 그러나 현재 서울 주요 대학의 기숙사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교육부 산하 대학 공시체계 ‘대학알리미’ 조사에 따르면 대학 기숙사 수용률(재학생 수 대비 기숙사 수용 인원)은 10~20% 수준이다. 고려대(10.4%), 이화여대(11.3%), 한양대(11.4%)는 10%를 간신히 웃돈다. 소수 학생만 대학 기숙사 혜택을 보는 셈이다.
이에 각 대학에서는 기숙사 신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신축 사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한양대가 대표적이다. 한양대는 2015년 3월 해외 유학생 전용 ‘6기숙사’(540명 수용)와 국내 학생 전용 ‘7기숙사’(1450명) 신축 계획을 발표했다. 학생들은 이 소식에 반색했으나, 학교 인근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한양대 관계자는 “주민들은 기숙사가 생기면 임대업에 타격을 입어 생계를 위협받는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1월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청회도 열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양대가 대학 안에 기숙사를 짓는데도 인근 주민들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대학 안에 기숙사 등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서는 시청 심의를 통과하고 구청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15조에 따르면 대학 등의 학교는 도시계획시설로 분류된다. 도시계획시설은 동법 제88조에 따라 건물 신·증축 계획에 대해 도지사 또는 시장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양대는 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구청 허가에 앞서 서울시가 한양대 기숙사 건립에 관한 ‘세부시설 조정계획’ 심사를 시행했는데, 반대 민원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답이 왔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한양대의 6·7기숙사 건립 계획은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주민들이 “숲 파괴가 우려된다”며 대학 기숙사 건립에 반대한 경우도 있다. 고려대는 2013년 말 개운산 내 학교 땅(2만5782㎡)에 1100여 명을 수용하는 기숙사 신축 계획을 세운 후 이듬해 8월 근린공원으로 묶여 있던 해당 땅에 대한 토지용도 변경신청을 성북구청에 냈다. 고려대가 변경신청을 구청에 먼저 내야 했던 이유는 산지관리법 때문이다. 산지관리법 제15조에 따르면 국유림이 아니라도 산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부터 전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고려대는 성북구청이 산지를 대지로 전용하는 것을 허가해줘야 개운산 내 학교 땅을 건축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그러나 현재 대학 기숙사 신축은 중단된 상태다. 주민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혀 구청이 대지 전용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기숙사 신축 계획이 발표되자 학교 인근에 자리 잡은 하숙집과 원룸 주인 등이 나서 ‘산지나 공원으로 지정된 땅에 학교 시설을 지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민원을 구청에 끊임없이 넣었다. 이들은 ‘개운산 사랑 연합회’라는 조직을 만든 뒤 성북구민 1만여 명의 ‘기숙사신축반대’ 서명을 구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성북구청은 고려대 측에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며 신청 심사 자체를 보류해놓은 상태다.
고려대 한 관계자는 “성북구청에서 요구하는 대로 주민 설득 작업을 할 만큼 했다. 주민 대부분은 기숙사 건립에 공감하지만 월세 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원룸업자 등 일부 주민은 아직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고려대 측은 주민들에게 개운산 산림 복원과 편의 및 운동시설 설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오중균 성동구의회 의원은 “주민들은 대학 기숙사를 짓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개운산 녹지가 사라질까 봐 염려하는 것이다. 개운산에 대학 기숙사를 지은 뒤 남은 땅에 운동시설까지 설치하면 녹지가 더 많이 사라지게 돼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북구청 관계자는 “녹지는 일부 주민의 반대를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 기숙사가 생기면 그 자리에 있던 개운산의 체육·편의시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려대도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새로운 조건을 마련하고자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고려대와 마찬가지로 환경 문제로 대학 기숙사 건립에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기숙사를 지은 학교가 있다. 이화여대다. 2013년 대학 기숙사 신축 계획을 발표한 이화여대는 서대문구 북아현동 안산 내 산림(6만1118㎡)에 건물을 지었다. 인근 주민들이 기숙사 공사 때문에 산림이 파괴되고 대학생을 상대로 한 임대업자의 타격이 크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서대문구청은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다. 2014년 3월 이화여대가 기숙사 건축 허가를 서대문구청에 신청하자 구청은 같은 해 7월 건축 허가를 내줬다. 한 달 뒤인 8월부터 이화여대는 기숙사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일부 환경시민단체와 주민들은 2015년 9월 “기숙사 대지 중 일부는 산림청장에게 협의를 요청하는 등 산지 전용 허가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이승한)는 “산지관리법상 해당 기숙사 대지의 산지 전용 허가권은 서대문구청이 갖고 있으므로 건축 허가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하며 기숙사 건립을 허용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화여대 기숙사를 둘러싼 소송에서 보듯, 한양대나 고려대의 기숙사 신축도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허가하면 당장 공사를 시작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학생 이모(26) 씨는 “(성북)구청이 향후 선거를 의식해 주민들 눈치를 보고 있다”며 “학생들도 이런 분위기를 읽고 주소지를 성북구로 옮기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학교 근처에서 임대업을 하는 주민만 대학 기숙사 신축을 꺼리는 것은 아니다. 일반 주택가 주민들에게도 대학 기숙사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추진 중인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행복기숙사도 지역 주민의 반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동소문동 행복기숙사는 2014년 문을 연 서대문구 홍제동 행복기숙사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추진되는 연합기숙사다. 11층 건물에 383실을 지을 예정이며, 학생 인당 월 19만~24만 원의 기숙사비를 내게 된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은 2015년 10월 교육부로부터 행복기숙사 건립 계획 및 국유재산 무상사용을 승인받고, 지난해 4월 성북구청에 건축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행복기숙사 주변 아파트의 일부 주민이 건축 허가 반대 민원을 제출해 지금까지 건축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생활여건 침해다. 기숙사 대지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위치한 돈암초등학교 학부모들과 인근 한신·한진아파트 거주민들은 공사 기간 소음, 분진, 진동 등의 생활 피해와 공사 차량으로 인한 초등학생 안전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 측은 소음·진동의 최소화, 공사 차량 출입 시 안전유도 요원 상시 배치 등 대책을 내놨다. 조망권, 일조권 등의 침해를 줄이려고 11층인 기숙사 층수를 조정하고 건물 중간도 비웠다. 또 재단은 지난해 9월 두 차례 주민 설명회와 세 차례 공청회를 갖고 기숙사 시설을 개방해 주민 편의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과 성북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젊은 층의 대거 유입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며 성폭력 사건이 다발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큽니다’라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의 임경지 위원장은 “행복기숙사 건립 반대는 집값 하락을 우려해 공공임대주택 건립에 반대하는 양상과 비슷하다. 행복기숙사 건립으로 외부인들이 동네에 갑자기 유입되는 것을 불안해하는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대학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성북구청은 주민들의 반발에도 사업을 승인할 태세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1월 18일 공청회를 끝으로 행복기숙사 사업을 재검토한 후 승인할 예정이다. 기숙사 건축 허가와 관련해 법적 문제가 없어 조만간 승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생의 주거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는 현 상황에서 대학 기숙사 건립은 학생 복지를 위해 필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예상외로 심한 건 과거와 달라진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10년 동안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대학 주변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원룸이 우후죽순 생겼다”며 “주민 처지에선 기숙사가 생기면 생계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 반대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학생과 주민의 처지가 정반대라 해결책을 모색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임경지 위원장은 “학교나 지자체가 임대업자와 협약을 맺고 공실이 나지 않게 학생을 채워주는 대신 집세를 낮추는 등 학생과 임대업자 양측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며 “단, 공실률과 집세 할인율을 정할 수 있도록 임대업자는 자신의 수익을 지자체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기숙사에만 들어가면 주변 원룸보다 월세를 아낄 수 있을까. 대부분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실제 각 대학이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기숙사가 아닌, 민간이 운영하는 ‘민자기숙사’는 웬만한 자취방보다 월 기숙사비가 비싸다. 민자기숙사는 2005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도입한 제도로, 대학의 재정 상황을 감안해 민간자본으로 캠퍼스 안에 기숙사를 지어 운영하도록 한 것. 그러나 운영을 전적으로 민간에 맡기다 보니 기숙사비 인상을 막을 수 없다.
한양대 스마트빌 기숙사비는 4개월에 294만 원으로 주변 원룸의 221만 원보다 73만 원(33.15%) 비쌌다. 건국대 쿨하우스, 고려대 프런티어관, 연세대 SK국제학사 역시 외부 원룸보다 14~16% 비싸게 기숙사비를 받고 있다. 일부 학생은 ‘민자기숙사를 건립하면서 한국사학진흥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토지 매매비도 들지 않았는데 기숙사비가 너무 비싸다’며 지난해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정남진 민달팽이 유니온 사무국장은 “대학생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지방자치단체, 대학이 비용을 부담해 짓고 운영하는 공공기숙사 건립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자취, 하숙 등 임대업자 극성 반대…환경, 교육 등 이유로 신축 막아
2014년 10월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정문 앞에서 인근 주민들이 북아현동 이화여대 기숙사 건립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뉴스1] |
학생은 반색, 임대업자는 난색
2015년 10월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총학생회가 기숙사 건립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
서울 동작구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정모(22) 씨는 “전체적으로 자취방 월세와 보증금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지난해 초에도 방 대부분이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45만 원이었다. 그런데 막상 방을 보면 남자 둘이 들어가기도 좁은 경우가 많았다. 더 쾌적한 곳에서 살고 싶었지만 예산이 모자라 어쩔 수 없이 그 방을 계약했고 아직까지 살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생은 대부분 자취방보다 대학 기숙사를 선호한다. 서울시내 대학 기숙사의 월 기숙사비는 20만~30만 원 선. 관리비나 보증금은 따로 없다. 외부에서 방을 빌리는 것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학교에서 고용한 관리인이 따로 있어 웬만한 원룸보다 쾌적하다. 그러나 현재 서울 주요 대학의 기숙사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교육부 산하 대학 공시체계 ‘대학알리미’ 조사에 따르면 대학 기숙사 수용률(재학생 수 대비 기숙사 수용 인원)은 10~20% 수준이다. 고려대(10.4%), 이화여대(11.3%), 한양대(11.4%)는 10%를 간신히 웃돈다. 소수 학생만 대학 기숙사 혜택을 보는 셈이다.
이에 각 대학에서는 기숙사 신축 계획을 발표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신축 사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한양대가 대표적이다. 한양대는 2015년 3월 해외 유학생 전용 ‘6기숙사’(540명 수용)와 국내 학생 전용 ‘7기숙사’(1450명) 신축 계획을 발표했다. 학생들은 이 소식에 반색했으나, 학교 인근 주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한양대 관계자는 “주민들은 기숙사가 생기면 임대업에 타격을 입어 생계를 위협받는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1월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청회도 열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양대가 대학 안에 기숙사를 짓는데도 인근 주민들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다. 대학 안에 기숙사 등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서는 시청 심의를 통과하고 구청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15조에 따르면 대학 등의 학교는 도시계획시설로 분류된다. 도시계획시설은 동법 제88조에 따라 건물 신·증축 계획에 대해 도지사 또는 시장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양대는 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구청 허가에 앞서 서울시가 한양대 기숙사 건립에 관한 ‘세부시설 조정계획’ 심사를 시행했는데, 반대 민원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답이 왔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한양대의 6·7기숙사 건립 계획은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주민들이 “숲 파괴가 우려된다”며 대학 기숙사 건립에 반대한 경우도 있다. 고려대는 2013년 말 개운산 내 학교 땅(2만5782㎡)에 1100여 명을 수용하는 기숙사 신축 계획을 세운 후 이듬해 8월 근린공원으로 묶여 있던 해당 땅에 대한 토지용도 변경신청을 성북구청에 냈다. 고려대가 변경신청을 구청에 먼저 내야 했던 이유는 산지관리법 때문이다. 산지관리법 제15조에 따르면 국유림이 아니라도 산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부터 전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고려대는 성북구청이 산지를 대지로 전용하는 것을 허가해줘야 개운산 내 학교 땅을 건축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환경 문제로 불거지는 경우도 있어
대학생들은 비싼 자취방 월세가 부담스러워 기숙사를 찾지만 서울 내 대학들은 기숙사 수용률은 대부분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뉴스1] |
고려대 한 관계자는 “성북구청에서 요구하는 대로 주민 설득 작업을 할 만큼 했다. 주민 대부분은 기숙사 건립에 공감하지만 월세 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원룸업자 등 일부 주민은 아직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고려대 측은 주민들에게 개운산 산림 복원과 편의 및 운동시설 설치를 약속했다.
그러나 오중균 성동구의회 의원은 “주민들은 대학 기숙사를 짓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개운산 녹지가 사라질까 봐 염려하는 것이다. 개운산에 대학 기숙사를 지은 뒤 남은 땅에 운동시설까지 설치하면 녹지가 더 많이 사라지게 돼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북구청 관계자는 “녹지는 일부 주민의 반대를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 기숙사가 생기면 그 자리에 있던 개운산의 체육·편의시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려대도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새로운 조건을 마련하고자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고려대와 마찬가지로 환경 문제로 대학 기숙사 건립에 난항을 겪었지만 결국 기숙사를 지은 학교가 있다. 이화여대다. 2013년 대학 기숙사 신축 계획을 발표한 이화여대는 서대문구 북아현동 안산 내 산림(6만1118㎡)에 건물을 지었다. 인근 주민들이 기숙사 공사 때문에 산림이 파괴되고 대학생을 상대로 한 임대업자의 타격이 크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서대문구청은 학교 측의 손을 들어줬다. 2014년 3월 이화여대가 기숙사 건축 허가를 서대문구청에 신청하자 구청은 같은 해 7월 건축 허가를 내줬다. 한 달 뒤인 8월부터 이화여대는 기숙사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일부 환경시민단체와 주민들은 2015년 9월 “기숙사 대지 중 일부는 산림청장에게 협의를 요청하는 등 산지 전용 허가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이승한)는 “산지관리법상 해당 기숙사 대지의 산지 전용 허가권은 서대문구청이 갖고 있으므로 건축 허가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판결하며 기숙사 건립을 허용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화여대 기숙사를 둘러싼 소송에서 보듯, 한양대나 고려대의 기숙사 신축도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허가하면 당장 공사를 시작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학생 이모(26) 씨는 “(성북)구청이 향후 선거를 의식해 주민들 눈치를 보고 있다”며 “학생들도 이런 분위기를 읽고 주소지를 성북구로 옮기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학교 근처에서 임대업을 하는 주민만 대학 기숙사 신축을 꺼리는 것은 아니다. 일반 주택가 주민들에게도 대학 기숙사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추진 중인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행복기숙사도 지역 주민의 반발로 진통을 겪고 있다. 동소문동 행복기숙사는 2014년 문을 연 서대문구 홍제동 행복기숙사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추진되는 연합기숙사다. 11층 건물에 383실을 지을 예정이며, 학생 인당 월 19만~24만 원의 기숙사비를 내게 된다.
주민들, 학교 근처 아니더라도 대학 기숙사는 싫어
서울 서대문구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기숙사 ‘꿈꾸는 다락방’. 월 5만~10만 원만 내면 이용이 가능하다. [뉴스1] |
한국사학진흥재단 측은 소음·진동의 최소화, 공사 차량 출입 시 안전유도 요원 상시 배치 등 대책을 내놨다. 조망권, 일조권 등의 침해를 줄이려고 11층인 기숙사 층수를 조정하고 건물 중간도 비웠다. 또 재단은 지난해 9월 두 차례 주민 설명회와 세 차례 공청회를 갖고 기숙사 시설을 개방해 주민 편의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국사학진흥재단과 성북구청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젊은 층의 대거 유입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해지며 성폭력 사건이 다발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큽니다’라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의 임경지 위원장은 “행복기숙사 건립 반대는 집값 하락을 우려해 공공임대주택 건립에 반대하는 양상과 비슷하다. 행복기숙사 건립으로 외부인들이 동네에 갑자기 유입되는 것을 불안해하는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대학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성북구청은 주민들의 반발에도 사업을 승인할 태세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1월 18일 공청회를 끝으로 행복기숙사 사업을 재검토한 후 승인할 예정이다. 기숙사 건축 허가와 관련해 법적 문제가 없어 조만간 승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생의 주거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는 현 상황에서 대학 기숙사 건립은 학생 복지를 위해 필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예상외로 심한 건 과거와 달라진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10년 동안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대학 주변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원룸이 우후죽순 생겼다”며 “주민 처지에선 기숙사가 생기면 생계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 반대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학생과 주민의 처지가 정반대라 해결책을 모색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임경지 위원장은 “학교나 지자체가 임대업자와 협약을 맺고 공실이 나지 않게 학생을 채워주는 대신 집세를 낮추는 등 학생과 임대업자 양측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며 “단, 공실률과 집세 할인율을 정할 수 있도록 임대업자는 자신의 수익을 지자체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룸보다 비싼 기숙사?
2016년 2월 서울지역 민자기숙사 운영 현황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한 대학생과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
한양대 스마트빌 기숙사비는 4개월에 294만 원으로 주변 원룸의 221만 원보다 73만 원(33.15%) 비쌌다. 건국대 쿨하우스, 고려대 프런티어관, 연세대 SK국제학사 역시 외부 원룸보다 14~16% 비싸게 기숙사비를 받고 있다. 일부 학생은 ‘민자기숙사를 건립하면서 한국사학진흥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토지 매매비도 들지 않았는데 기숙사비가 너무 비싸다’며 지난해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정남진 민달팽이 유니온 사무국장은 “대학생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지방자치단체, 대학이 비용을 부담해 짓고 운영하는 공공기숙사 건립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