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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칼럼 - 한영섭의 금융산책

토론문, ‘공정’으로 청년의 빈곤한 삶을 해결할 수 없다, 한영섭

금융리터러시 2019. 10. 30. 13:17

본 발제문은 청년단체 긴급토론회에서 발제안 내용 중 일부입니다.


‘공정’으로 청년의 빈곤한 삶을 해결할 수 없다

한영섭

‘공정함’이라는 키워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이것이 촛불이후 한국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 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현상

조국사태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 정시확대 등 일련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는 ‘공정’이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목소리에 청와대는 크게 반응을 하였고, 사회전반에 공정함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모든 사람의 노력을 보장하는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되어야 합니다.

국민께서 가장 가슴 아파하는 것이 교육에서의 불공정입니다.

정시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습니다.“

- 2019년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 시정연설 중 일부

그러나 청와대의 사회진단은 편협하다. ‘좋은 말’은 넘치지만 체계적이지 않고 철학과 방향 없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그것을 방조하는 여당과 동조하고 있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정시확대 발표가 나왔을 때 자유한국당의 환영반응이 그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개혁을 하라고 했더니 엉뚱한 방향으로 후퇴하고 있다.

교육 입시비리, 취업 채용비리 등 온갖 비리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이런 문제를 바로세우는 일은 너무 중요한 일이다. 그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공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게임의 규칙, 경쟁의 규칙을 바로 세우면 청년문제는 해결 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정말 청년문제의 핵심인가? 근본적인 해결방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 현황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가계부채는 급격히 늘었고,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으며 온갖 사회문제가 분출하였다. 이런 사회 현상 속에서 우리 시민들이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정부를 세웠다. 여러 과제를 안고 출발한 ‘문재인정부’가 오랫동안 쌓여 있는 산적한 문제들을 일시에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오히려 ‘전임자의 X’치우다 임기가 끝날 것으로 예상을 했다.

문재인정부와 여당은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체감하고 있는 현실은 다르다. 가계부채는 이미 1,500조원을 넘었다. 증가 추세가 감소되어 다행이지만, 여전히 GDP 대비 비중이 아시아국가 중에서는 최고이다. 청년부채 또한 줄지 않고 증가하는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청년층의 개인회생, 개인파산 신청도 다른 연령보다 증가되고 있다.

또한 청년부채 문제 중 하나인 학자금부채도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신규대출은 줄어들었지만 이미 발생되어 있는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청년생활부채, 학자금부채 등 청년 부채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데 정부와 여당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미국의 대선 주자 중 민주당의 버니샌더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선주자가 ‘학자금부채탕감’을 공약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대학교육 무상화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사회에서는 학자금부채 이자를 지원하고, 고교 무상교육을 시행하고 정도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학자금부채를 탕감하자고 주장하는 용기 있는 기성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시든 정시든 입시의 공정함만이 과연 철학 있는 교육개혁의 방향인가? 정말 누구나 노력하면 명문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in서울, SKY(서울,고대,연대)에 공정하게 들어가게 하는 교육이 좋은 교육인가? 대학서열화를 없애고, 사학개혁을 하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이지, 청년과 부모들에게 명문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라고 강요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 더 나아가 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를 만드는 노력은 허상에 불과한 것인가? 대학진학률이 떨어지고 있다. 이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라는 시그널이 아니라 이름 있는 대학을 가지 않고서는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 청년들의 포기와 도전이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청년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대 가구주의 순자산은 감소하였다. 이는 전 연령 중 유일하게 감소한 것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세대간 불평등의 현상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세대 내에서도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20대 순자산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으며 자산불평등을 비롯한 경제적불평등이 청년층에게 가장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상황이 청년들로 하여금 심리적 위축과 우울, 자살 등의 사회적문제의 원인중 하나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경제적불평등은 청년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대에 걸친 문제이다. (다른 세대에 대한 문제는 지면상 거론하지 않겠다.) 이런 격차를 강화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이 사회가 낳은 ‘내면화된 경쟁과 그에 대한 공정함의 욕구’이다.

3. 문제인식

‘공정함’은 정의로운 경쟁의 전제조건이다. 특히 시장경제에서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하기 위한 시스템이자 도구이며 주어진 게임의 룰을 잘 만들고, 그 결과에 승복하게 만드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정함이라는 ‘수단’이 ‘목적’이 되면 사회는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공정하게 경쟁한 결과에 승복한다는 것은, 경쟁을 통해 획득한 자산(인적, 물적, 문화적 자산을 포함)에 대한 소유권을 강화시키고 ‘갑질’과 같은 기득권적 주장의 근거가 된다.

대표적인 것이 교육에서의 공정함이다.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 경쟁하여 학벌, 인맥자본을 획득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가? 그렇게 획득한 기득권은 어느덧 성이 되어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하는 현실이 아닌가? 교육이 계급을 강화시키는 요소로 작동되고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의 룰을 잘 만들겠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설령 그 경쟁의 룰을 잘 만든다고 하여 결과가 정의로울까? 부모의 학벌과 소득, 자산 수준에 따라 자녀의 학벌, 자산이 결정된다는 연구는 쏟아지고 있다. 세습자본주의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교육은 시장경제의 원리로 구성하면 안 된다. 교육이 신분상승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어떻게 사회를 재구성할 것인가? 이런 논의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좋은 교육’은 시장원리를 통해 조달할 수 없다. 아니 조달시켜서는 안 된다.

공정한 경쟁의 상징은 공무원시험이다. 그러나 최근에 부모 재력의 순서에 따라 공무원시험 합격률이 결정된다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제 더 이상 공무원시험 조차도 세습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실 너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안정적으로 시험 준비를 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하는 계층의 차이는 너무나 뻔하다. 그러나 재력에 따라 공무원 합격률이 달라진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공무원은 어떤 사람들인가 주권을 가진 국민의 일꾼으로 공익을 추구하며 다양한 사회구성원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공무원이 재력에 따라 결정된다면 특정 계급만을 위한 통치수단으로 전략해 버릴 수 있다. 나아가 ‘좋은’ 공무원은 무엇인가? 단순히 잘리지 않는 안정적인 직업인인가? 더 폭넓은 철학으로 접근이 필요하다.

공정함은 능력주의를 작동시키는 언어이다. 능력주의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열심히만 하면 엘리트 대학에 갈수 있고, 공무원이 될 수 있고, 대기업을 갈 수 있다는 말로 쓰여진다. 모두가 엘리트 대학에, 공무원이, 대기업에 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현실이 아니던가? 또한 그것을 획득한 개인들이 그들 스스로의 능력뿐만 아니라 부모의 재력이 바탕이 된다면 더 이상 능력주의에 기대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꼭 부모의 재력이 있어야 성공, 자본을 획득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경쟁에서 기회를 획득한 이들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노력이 재대로 작동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다만 노력이 더 이상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몇 년 전 출간된 『노오력의 배신』이라는 책을 문재인정부와 정치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앞서 문재인정부가 이야기한 사회전반의 공정함이라는 수단은 안타깝게도 기득권을 더욱 강화시키는 언어로 쓰여지게 된다. 문재인정부가 초기 이야기했던 포용사회, 격차를 줄이는 방향과는 거꾸로 가는 행보이다.

4. 결론과 방향

공정한 시장경제의 질서를 세우고, 법치를 세우는 일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경쟁을 통해 획득해야할 것이 있고, 기본적으로 보장해야하는 것이 있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한 기본권에 해당되는 것은 보장해야한다. 더 이상 청년들에게 생존을 위한 노오력을 강요하지 말자.

정부와 우리가 진짜 노-력해야하는 것은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켜 환경오염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인간과 자연을 보다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토론이다. 더 나아가 인간다운 삶과 개개인이 피어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