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
- 사이코 다마키 지음, 김재원 옮김, 꿈꾼문고
역자후기 (2017년 10월 30일 김재원)
일본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모녀관계’로 고통받는 딸들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수 많은 이름으로 분류되고 정의되었다. 독모, 묘지기 딸, 상자 속 딸, 일란성 모녀... 숨죽여 고통받던 딸들이 호소가 속속 수면 위로 부상했고, 서점가에는 이른바 ‘착한 딸’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침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책은 모녀관계가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의 장에 나오기 전인 2008년에 출간된 것으로, 저자 사이토 다마키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비평가이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저자는 임상 현장에서 수많은 엄마와 딸의 갈등을 목격하면서 오로지 모녀관계에서만 보이는 특이점을 발견했다. 엄마와 딸의 애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출구 없는 밀실 속으로 몰아넣는 그 특이성에 저자는 주목했다. 이 책은 켤고 모녀관계 문제의 주체일 수 없는 남성 저자의 연구 기록이기도 하다.
엄마와의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는 딸이라면 누구든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는 이 단호한 제목에 한 번쯤은 눈길을 멈추지 않을까. 고민의 이뉴는 제각각일 것이다. 진로나 생활 전반에 대한 엄마의 지나친 간섭, 어릴 적부터 일상처럼 이어져온 엄마의 ‘외모 검열’, 엄마의 하소연과 불평을 묵묵히 들어야 하는 ‘감정 쓰레기통’역할에 따른 피로감과 분노 등, 저자는 이처럼 다양한 모녀갈등이 모두 딸의 인생을 지배하려는 엄마의 컨트롤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단언한다. 갈등의 양상과 형태는 다양하나 결국 본질은 하나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이른바 ‘문제 어머니’를 세분화하고 특정짓는 일련의 방법론에 회의적이다. 또한 갈등 상황에 맞는 대처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거나, 상처받는 딸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않는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냉정한 이해 없이는 해결법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저자의 신념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모녀관계의 지배구조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저자가 지적하는 견고한 가부장제와 성 편견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사회가 강요하는 획일적인 여성다움의 기준이 엄마의 훈육을 통해 딸의 내면에 새겨지는 구도는, 여전히 우리가 생활 속에서 목격하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이 뜨거운 화도루 떠오르고, 착한 딸과 좋은 엄마의 굴레 안에서 고통받는 모녀관계 문제도 조금씩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배하는 엄마 뒤에서 그저 뒷짐을 지고선 아빠라는 틀은 변함없이 견고하고, 엄마에게서 ‘자기 인생’을 빼앗아가는 사회구조 역시 여전하다. 현실의 필연적 결과물이나 다름없는 ‘밀실’속에서 고통받는 딸들은, 그것을 당연한 몫으로 치부하는 불편한 시설들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죄책감과 싸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당사자들의 자각과 경계에 더불어, ‘밀실을 개방하는 자’로서의 제3자의 역할에 무게를 두는 저자의 조언이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이유가 아닐까 쉽다. 불편하지만 꼭 말해야하고,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역자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로서, 이 책의 번역 작업은 내게 특별하고도 뼈아팠다. 언어를 옮겨내는 기술적 어려움과 별개의 무거운 고민과 늘 마주해야 했고, 결국엔 스스로 답을 얻어야할 질문들이 쏟아졌다. 덕분에 작업을 끝마친 후련함은 덜하지만, 그 질문들을 얻은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시간이였음은 틀림없다. 이 책을 토해 엄마와 딸, 혹은 ‘제3자’가 저마다의 질문을 던지고 곱씹는 시간을 갖게 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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