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필자(한영섭)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영끌, 빚투, 패닉바잉…'금융문맹' 탈출하자?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탄탄한 사회보장이다"
네이버 금융 종목토론 온라인 게시판에 "주식 처음 투자하는데 환불되나요?" 하고 글이 올라와 한동안 이슈가 되었다. 이 개인 투자자는 ㈜빅히트에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 주식이 30만 원일 때 결혼 자금 5000만 원을 다 털어서 매수했다고 밝혔다. 그룹 BTS가 속해 있는 빅히트가 상장 직후 주식 가격이 수식 상승하였다가 다음 날부터 떨어지면서 고민을 토로했던 일이다.
동학개미, 영끌, 빚투, 패닉바잉… 재테크의 신조어들
동학개미, 영끌, 빚투, 패닉바잉 등 연일 재테크 관련 신조어가 탄생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2030 청년세대를 주축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SBS 기사를 보니,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입 중 30대 비중이 38.5%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또한 20대가 전국에서 매입한 아파트는 한 달 전보다 25% 급증했고, 전체 매입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으로 5%를 넘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서도 청년들 사이에서도 '정부에서 하는 행복주택도 들어가는 것도 버거운데, 몇십억 원이나 하는 아파트를 도대체 누가 구입을 하는 건가?'라고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연일 치솟는 부동산 가격, '누가 몇 년 만에 얼마를 벌었다더라', '전세 대란' 이러한 언론 기사를 보면 평온했던 삶이 요동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재테크 열풍 대열에 끼어들든, 낄 수 없든, 낄 필요가 없든, 포기했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는 자산 증식의 욕망도 작용을 하지만 그보다 불안정한 사회구조에 따른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언제든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보건·경제 위기를 맞아 사람들은 매일 살얼음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한국의 피케티 지수(자산불평등 지수)가 2017년 7.9배에서 2019년 8.7배로 상승한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피케티 지수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위기를 일상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과 같이 산다면 '불행한 미래'만 예측될 뿐이다. 지금도 불안하지만 미래는 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희망이 없는 삶을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재테크를 고민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투자 관련 정보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재테크 관련 도서 판매가 늘었다. 또한 경제 관련 기사가 넘치고, 경제 유튜버가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다. 여러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최근에 그는 강연과 방송을 통해 이야기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존리의 금융문맹 탈출>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주식 투자는 필수이고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단기 투자가 아니라 장기·가치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또한 노인층의 빈곤율과 자살률을 이야기하며 은퇴한 후 노후 자금이 부족해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미리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주식 투자를 어릴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문제라며 '금융문맹'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공적연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공적연금 등을 고려하지 않고 금융문맹을 탈출하면 노후 준비가 가능한 것인가?
재테크, 불행한 미래를 바꿀 선택지?
개인 투자자의 1인당 주식거래 계좌 수가 올봄 '동학개미'로 인하여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0년 4월 1인당 주식거래 계좌 수는 0.61개로 미국의 0.31개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이미 주식 투자가 일상화되어있다는 미국을 추월했다.
기획재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가 주식을 통해 연 2000만 원의 이익을 버는 인구는 투자자의 5% 이내, 5000만 원 이상은 약 2.5%이다. 또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개인 투자자 600만 명 가운데 40%인 240만 명이 손실을 겪었고, 연간 1000만 원을 초과하는 이익을 내는 개인 투자자는 10%에 불과하다.
존리 대표가 이러한 현실을 알면서 투자를 권유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를 활용하여 펀드 등 간접 투자 상품을 이용해야 한다니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것 아닌가. 노후 문제 해결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단기 투자 문화와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이 없는 듯하다.
금융문맹은 금융 이해도를 높여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자는 취지로 사용된다. 금융문맹 탈출이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러한 주장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얼핏 보면 필요한 주장 같이 들리지만, 이는 개인이 처해있는 여러 경제적 어려움을 개인이 노력하면 누구나 해결할 수 있다는 공리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국가는 열심히 개인을 학습시키면 되는 학습 의무자 역할만이 강조된다. 즉, 올바르게 학습할 수 있는 기회만 제공해 능력 있는 개인을 만들면 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이는 어떠한 사회적 결과를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돌리게 한다. 투자에 실패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 혹은 가난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의 문제가 개인의 잘못된 의사결정에 기인한다고 재단해 버리게 된다.
불확실한 투자 대신 안정적인 사회보장을 요구하자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사람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서,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투자하게 되었을까? 누구나 겪게 되는 보편적인 사회 문제를 주식 투자 등 개인의 영역으로 맡겨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불확실한 미래를 투자 위험이 존재하는 투자 자산에 의존한다면 사회의 불안정은 더욱 구조화될 것이다.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일은 개인의 의사결정을 넘어 국가의 헌법상 의무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모두에게 발생 되는 사회적 불안에 대한 대안은 모두가 부자가 되기 위한 불확실한 투자 전략이 아니다. 함께 살 수 있는 미래만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다. 최소한 인간다운 존엄성을 유지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안정적인 기초연금, 의료보장 확대, 참여소득 등 사회보장을 강화하고 이를 위한 토대로써 보편적 증세에 나서야 한다.
세금의 문턱을 낮추어 누구나 쉽게 금융투자를 하고 금융문맹에서 탈출하자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다시 주장하고 요구하는 일이다.
세상을 바꾸는 금융연구소장 한영섭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0111313008894?fbclid=IwAR3frI0cD7YzVaSUb8DmgShbswrxIuwx3YOtkCaceiBshAmtu5hsR3ha5WI#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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